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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June 21, 2020

[한창완·박인하의 만화는 시대다] 불행에 공감하던 60년대 소녀에 ‘행복의 이상향’ 심어 주다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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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부터 순정만화계를 이끈 엄희자 작가는 ‘행복의 별’ 등 욕망하는 소녀 주인공을 앞세운 만화를 선보이며 당시 소녀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었다. 특히 작가는 순정만화의 특유의 아름다운 그림체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청강만화역사박물관 제공

1964년 가을, 반짝이는 눈에 오뚝한 콧날, 붉은 입술의 소녀가 반려견을 안고 있는 표지의 ‘행복의 별’ 1권이 만화방에 선보였다. 무역회사 사장님으로 자가용을 타고 다니는 아버지와 명동에서 고급 양장점 미라노를 경영하는 디자이너 어머니를 둔 서유미가 작품의 주인공이다. “아빠도 엄마도 너무 바쁘셔서 나는 항상 혼자”인 유미는 피아노와 성악, 고전무용까지 배우고 있다.

새로 맞춘 원피스를 가봉하는 날 엄마는 잡지사 좌담회가 있어 나가고 유미가 좋아하는 디자이너 은정이 유미 옷을 가봉한다. 은정은 8개 국어를 하는 실력파 디자이너다.

그런데 그날 외국 손님이 화려한 드레스를 내일까지 만들어달라며 막무가내로 돈뭉치를 놓고 간다. 이튿날 유미는 은정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한다. 양장점이 끝나고 은정의 아파트로 가던 유미는 공원에서 기억을 잃은 아름다운 외국 소녀를 구해 준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러나 한국어는 할 수 있는 외국 소녀는 유미의 집에서 함께 살게 되고, 이후 은정도 함께 살게 된다. 외국 소녀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이상하게 유미 아버지가 이집트에서 사 온 고대 이집트 왕녀상만 보면 괴로워한다.

순정만화의 이정표

대표작 ‘행복의 별’의 표지. 청강만화역사박물관 제공

‘행복의 별’은 그때까지 나온 소녀들을 위한 만화와 달랐다. 우선 검은 머리를 양 갈래로 딴 유미, 베일에 싸인 금발의 소녀를 비롯해 등장하는 모든 여성 캐릭터들이 화려해졌다. 반짝이는 커다란 눈을 가진 소녀가 주인공으로 나온 만화가 없던 건 아니었다. 한성학의 ‘영원한 종’(1957), 권영섭의 ‘울밑에 선 봉선이’(1960), 박기정의 ‘흰구름 검은구름’(1963)처럼 소녀가 주인공인 만화가 있기는 했다. 대개 착한 소녀가 고난을 극복하는 이야기였다. 일제강점기와 한국 전쟁으로 인한 죽음, 실종 등 전쟁 체험, 가난한 사회 속에서 순수한 마음의 주인공 소녀가 고통받고 슬퍼하며 눈물 흘리는 모습이 주로 담겼다.

이와 달리 ’행복의 별’은 주인공을 가난·이별·죽음과 같은 불행한 고통에 빠뜨리지 않았다. 작품은 연민의 감정 대신 조형적 아름다움과 세련된 도시의 삶을 선택했다. 순정한 소녀가 아니라 욕망하는 소녀가 주인공이 됐다.

‘행복의 별’ 주인공 유미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부잣집 딸로 자신이 필요한 것을 요구하는 캐릭터다. 미지의 외국 소녀를 구할 수 있었던 것도 엄마 양장실에서 근무하는 은정의 집에서 하루를 자고 오겠다고 해 시작된 일이다. 자가용은 물론 넓은 정원, 카펫이 깔린 거실, 커다란 침대가 있는 침실, 열대 식물로 장식된 티룸 등 1960년대 평범한 독자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배경에서, 고대 이집트를 오가는 미스테리한 사건이 벌어진다. 고난받는 순수한 소녀의 불행에 공감하도록 하고, 마침내 자기연민에 빠지게 해 눈물을 쏙 빼는 여느 만화와는 달랐다.

‘행복의 별’에는 불행에 허우적거리는 소녀들이 아니라 근대 도시의 삶이 등장했다. 화려한 저택, 멋진 전문직 여성, 그리고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은 두 소녀까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의무교육의 혜택을 받기 시작한 소녀(1959년 취학률이 96.4%가 되면서 초등학교 의무교육이 겨우 완성되었다)들은 만화방에서 엄희자 만화를 보며 새로운 꿈을 만났다.

작가를 스타작가 반열에 올린 ‘행복의 별’. 만화는 명랑한 두 소녀가 고대 이집트를 오가는 미스테리한 사건을 펼쳐 보이며 인기를 끌었다. 엄희자컬렉션 캡처

엄희자 만화는 이전 남성 작가들의 가족 만화와 다른 세계였다. 엄희자는 1961년 ‘장미의 눈물’로 데뷔한 장은주, 1962년 ‘꽃파는 소년’으로 데뷔한 민애니 보다 데뷔 시기는 늦었지만, 화려하고 도시적인 만화를 선보이며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까지 장은주 민애니 송순히 윤애경 등 여성 작가들과 함께 활동했다. 만화연구자 김소원 박사는 ‘엄희자의 등장과 한국 순정만화의 변화’라는 논문에서 1960년대 100%에 가까운 여학생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 문맹률이 저하되며 여학생을 주요 독자로 하는 새로운 오락거리로 ‘순정만화’가 탄생했으며, 순정만화의 역사는 엄희자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주장했다. 그만큼 엄희자의 출현은 충격적이었다.

탁월한 그림체와 스토리

엄희자는 1942년 신의주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했다. 그는 광화문에서 양복점을 하던 아버지 밑에서 유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중학교 졸업을 앞두었을 때쯤 아버지가 사기를 당해 빚더미에 오르게 됐다. 화가가 되고 싶었던 그는 진로를 바꿔 만화를 그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 후 한국만화연구소에 들어가 당시 만화가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신동헌 등에게 만화를 배운다. 이어 1960년대 초 인기있던 라디오극 ‘장희빈’의 작가 이서구에서 원작을 구입해, 장편 만화 ‘장희빈’ 시리즈를 제작해 큰 인기를 얻은 이범기 문하 출신으로 다양한 만화를 그리던 조원기 팀에 들어간다.

1960년대 초반은 만화방이 전국적으로 늘어나며 폭발적으로 퍼지던 시기였다. 만화를 소비할 만화방이 많아지며 다양한 장르가 확산됐다. 산호의 SF, 김종래 박광현의 사극, 박기당의 괴기, 박기정의 스포츠, 손의성의 액션, 김경언과 임창의 명랑, 방영진의 학원, 권영섭의 순정 등 특정 장르를 대표하는 인기 작가들이 등장했다.

만화방 만화의 특징상 빠른 속도로 후속 편을 내냐 수익이 증대됐다. 인기 작가들은 팀을 꾸려 스튜디오 시스템을 정착시켰다. 만화를 잘 그리지 못하지만, 돈이 있는 사람은 팀을 꾸려 가명으로 만화를 출간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만화를 공수해 베끼는 일들이 자주 벌어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향수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팀이다. 향수 팀은 신인 작가들을 모아 일본만화를 베껴 출간해 큰 인기를 끌었다.

조원기 팀에 들어간 엄희자는 탁월한 데생으로 두각을 나타낸다. 특히 기존 만화에서 볼 수 없었던 크고 반짝이는 긴 속눈썹을 지닌 눈과 작은 코와 입, 화려한 헤어 스타일로 대표되는 얼굴 묘사는 소녀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흔히 순정만화 스타일로 불리는 캐릭터 스타일은 사실적인 조형이 아니라 기호적인 조형 원리를 따른다. 동그라미, 타원, 사다리꼴 등으로 표현된 눈 가운데 들어간 빛은 미즈노 히데코의 ‘은의 꽃잎(銀の花びら)’(1957)에서 보인 십자가형 빛 표현을 시작으로 일본 소녀만화에서 정교하게 발전했다. 1960년대에 들어 일본 소녀만화는 타원형, 얇은 쌍꺼풀, 양쪽으로 긴 위 속눈썹과 아래 눈썹, 작은 점 형태로 바뀐 눈의 빛 표현으로 정착되었고 작은 코와 반짝이는 입술과 뾰족한 턱으로 양식이 정착된다. 조원기 팀에서 일본만화를 참고해 만화를 그리던 엄희자는 일본 소녀만화의 양식화된 표현을 실시간으로 받아들였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산유화’ ‘귀족의 딸’ ‘꿈의 궁전’ ‘잃어버린 그림자’. 청강만화역사박물관 제공, 엄희자컬렉션 캡처

한눈에 봐도 빛나고 아름다운 캐릭터는 표지는 물론 본문에서도 꽃 등으로 장식돼 삽입됐다. 누가 봐도 아름다운 소녀는 ‘행복의 별’(1964) ‘노란머리 앤’(1965)에서는 부유한 가정, ‘귀족의 딸’(1967)처럼 호텔, ‘공주와 기사’(1965), ‘비밀의 숲’(1965)처럼 판타지한 궁전, ‘노래의 날개’(1967)처럼 화려한 무대에서 활동한다. 1960년대 소녀들은 엄희자 만화를 통해 희생이 당연한 자기연민의 세계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밝고 당돌한 주인공을 보며 소녀들은 어쩌면 새로운 이상을 꿈꾸었을 것이다.

엄희자는 데뷔 이후 만화방 시장에서 특급 작가로 대우받았다. 수많은 작품을 출간했고, 어린이 신문과 잡지에도 만화를 연재했다. 하지만 당시 만화심의는 이국적인 풍광과 화려함을 용납하지 않았다. 결국, 1970년대에 접어들며 화려함이 점차 줄어들고, 장르도 명작물이나 가족물로 변화했다. 엄희자는 ‘카치아’(‘대령의 딸’ 각색), ‘세 자매’(‘작은 아씨들’ 각색), ‘사랑의 멜로디’(‘사운드 오브 뮤직’ 각색), ‘긴다리 아저씨’(‘키다리 아저씨’ 각색), ‘잠자는 공주’(‘숲속의 잠자는 공주’ 각색) 등 기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만화들을 발표했다. 또 1970년 ‘소년조선일보’에 연재한 ‘작은 새 노래’, 1979년 ‘여학생’의 ‘푸른지대’, 1980년 ‘새소년’의 ‘해바라기 가족’은 완연한 가족 드라마였다.

답답한 한국 만화 창작 풍토에 염증을 느꼈던 것일까? 엄희자는 1983년 부부가 된 조원기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다. 미국에서는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부부가 함께 애니메이터로 일을 하다 은퇴했다. 현재 전자책으로 서비스 중인 12편 정도의 작품을 통해 그의 만화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 달랠 수 있다.

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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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0, 2020 at 02:06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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