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에서 일어난 SF물 유행은 1980년대 순정만화에서 예고돼 있었죠"
지난달 25일 한국 순정만화 30년사를 기록한 책 '순정만화에서 SF의 계보를 찾다'를 낸 전혜진(40) 작가는 책을 낸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순정만화 스토리 작가이면서 SF물 작가라는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이는 그가 10대이던 1980년대 후반부터 국내 순정만화에 SF물이 등장한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다.
"'별빛 속에'와 '푸른 포에닉스', '아르미안의 네 딸들' 같은 각종 순정만화 속 SF와 판타지를 보고 자랐어요. 국민학생 시절 연습장에 처음 그린 만화 주인공은 우주로 나가는 여자아이 이야기였어요."
그는 여성 작가가 여성 독자를 대상으로 쓴 작품은 무조건 '순정물'로 묶여 평단에서 주목받지 못함은 물론 기초자료조차 부족한 것이 안타까워 이 책을 쓰게 됐다고 말한다.
1996년 만화 잡지 '윙크'에 연재된 이은혜 작가의 'BLUE'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일러스트가 연습장부터 샤프심, 지우개까지 다양한 문구류에 사용됐지만 작품의 성취를 분석한 논문 하나 없는 것이 현실이라는 설명이다.
전 씨는 아쉬움을 담아 이번 책에서 여성주의, 인권, 종교, 역사, 정상성에 대한 회의 등 다양한 주제의 SF물 30여편을 총 7부에 걸쳐 연도별로 분석했다.
그는 본문에서 김진이 '푸른 포에닉스'(1988)에서 정상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이미라가 '남성해방 대작전'(1997)에서 여성과 남성의 권력 구조를 꼬집는 등 사회에 대한 근본적 문제의식이야말로 한국 SF의 저력이라고 말한다.
"언론은 한국을 'SF의 불모지'라고 안이하게 평가하지만, 저는 국내 SF물이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발전해 왔다고 생각해요. 뒤늦게 주목받았을 뿐이죠."
1985년 김혜린 등 순정만화 작가 9명이 만화 동인 '나인'을 결성해 만화 잡지 '르네상스'를 창간하면서 순정 SF만화는 국내에서 물꼬를 텄다.
1990년대 일본 만화가 대거 수입되며 '한국 만화 위기'설이 나왔을 때도 만화 잡지 '윙크', '이슈', '터치'등은 강경옥의 '노말 시티', 서문다미의 'END' 등 걸출한 작품을 연재하며 한국 SF의 경쟁력을 유지했다.
최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10만 부 넘게 판매하며 인기 작가 대열에 오른 김초엽 등 1990년대생 여성 SF작가들이 탄생한 배경에는 1세대 SF·순정만화 작가들의 성취가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2세대 SF작가가 속속 나오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마치 김연아를 키우듯 스타 한 명만 바라보는 한국 문학계는 문제라며 모든 작가들이 더 나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좌우명이 '성실한 입금 확실한 원고'에요. 2세대 SF작가들은 적어도 일한 만큼의 정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국의 SF물이 더 발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July 25, 2020 at 03:57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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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별빛속에` 같은 만화, 오늘날 SF 열풍 초석" - 경인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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