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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June 12, 2020

[한창완·박인하의 만화는 시대다] 1959년 탄생한 첫 SF 히어로… 우주 넘나들며 시대를 앞서가다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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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호 작가의 출세작 ‘라이파이’ 표지. 필자 제공

1959년. 사라호 태풍으로 942명이 사망했고,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상업방송인 부산문화방송이 라디오 방송을 시작했고, 금성사에서 처음으로 라디오를 생산했던 바로 그해. 가슴에 ‘ㄹ’자가 선명한 슈트를 입고, 두건을 쓰고, 검은 복면을 착용하고, 가죽 장화를 신고 허리에는 호출기를 부착한 영웅이 등장했다. 제비호에서 줄을 타고 내려와 악당들을 돌려차기로 물리치는 정의의 영웅, 한국 만화 최초 SF 히어로 ‘라이파이’가 데뷔했다. 라이파이는 다른 영웅들처럼 지구의 운명을 걸고 격투를 했으며, 지구를 지키기 위해 비밀 기지에 숨어 살며 위기에 빠진 이들을 도와주었다.

1959년 제1부 ‘정의의 사자 라이파이’를 시작으로, 제2부인 ‘피너3세와 라이파이’, 제3부인 ‘녹의여왕과 라이파이’, 제4부인 ‘십자성의 신비와 라이파이’까지 총 4부작 32권으로 1962년에 완간되었다.

라이파이의 구원

1950년대 후반 좌판에서 시작된 만화방은 10년 동안 전국으로 퍼지며 어린이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그 시절 만화방은 싼 가격에 만화를 빌려보며 만화 안에서 새로운 세계를 꿈꿀 수 있던 유일한 공간이었다. 아이들은 동전 한두 푼이 생기면 골목 한쪽 좁은 만화방을 들락거렸고, 만화를 보는 순간만큼은 정의의 사도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 시절 ‘라이파이’를 읽은 독자들은 60년이 넘게 흘렀지만, 아직도 악당과 맞서 싸우는 라이파이의 화려한 돌려차기를 잊지 못한다. 전쟁의 상처를 다 치유하지 못하고, 4·19 혁명과 5·16 쿠데타로 이어지는 혼란했던 시절 22세기를 배경으로 세계를 구원하는 한국 영웅 라이파이는 당대의 빈곤과 무력감을 떨쳐버리게 했다.

서기 2130년 서울 무수한 사건을 해결한 유능한 김철수 탐정은 저명한 과학자 윤박사가 국제 범죄집단 Z단에게 납치되었다는 정보를 듣고 사건 현장을 찾아간다. 윤박사를 인질로 잡은 Z단의 협박에 제대로 손쓰지 못하고 있을 때 낯선 비행체가 나타난다. 비행체 아래에 문이 열리고 줄을 타고 라이파이가 순식간에 내려와 Z단을 처리하고 윤박사를 구해 하늘로 사라진다. 이때부터 김탐정은 신비로운 사나이를 찾기 시작한다. 라이파이는 지구정복을 꿈꾸는 Z단, 피너 3세, 녹의 여왕, 앗타 대왕, 벤핑히 등과 싸운다. ‘라이파이’는 작품의 주요 공간을 남극과 북극, 히말라야, 안데스 산맥, 남태평양 등 지구 곳곳은 물론 지구 우주로 나가 달과 여러 행성으로 확장되었다. 라이파이가 활약하는 공간이 넓어지는 만큼 1960년대 독자의 세계도 넓어졌다. 태백산맥 깊숙한 곳에 은밀히 인공안개로 둘러싸여 있는 라이파이 요새, 날렵하게 생겨 각종 첨단 장비가 부착된 최첨단 제비기, 공중을 부양해 날아다니는 에어카, 허리에 부착된 무선 호출기, 무선으로 조종되는 레이저 포, 홀로그램, 광자로켓 등 ‘라이파이’에 나오는 여러 과학적 상상력은 독자들에게 상상의 지평을 확장했다.

만화가 김산호는 한국 만화 최초의 SF 히어로물 ‘라이파이’로 군사정권 하에서 무력감에 시달리던 시민들을 위로했다. 이후 해외로 활동 반경을 넓힌 작가는 1960년대 미국 4대 출판사였던 찰튼코믹스의 전속작가로 들어가 300여편의 만화를 발표하기도 했다. 필자 제공

김산호는 194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재동초등학교 5학년 때 한국전쟁이 벌어졌는데, 서울에 내려온 소련 유학파 인민군 장교를 보며 새로운 세계에 대한 꿈을 갖게 됐다. 1·4 후퇴 때 여수로 피난 갔던 그는 초등학교 미술대회에서 상을 받는다. 당시 부상으로 수채화 화구를 받으면서 미술에 입문하게 됐다.

그의 아버지는 원래 만주를 오가며 사업을 했다. 그러나 불운이 겹치며 연이어 벌인 사업이 모두 실패한다. 그의 가족은 초등학교 졸업 전 여수를 떠나 부산으로 이주한다. 부산에서 그는 일본으로 가는 밀항선을 탔다가 해양경찰에 붙들리기도 했다.

혼란했던 시절이었지만 김산호는 늘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모험가로 성장했다. 전쟁이 끝나고 서울로 돌아와 문화극장 선전실에 입사해 간판을 그리며 그림을 배웠다. 극장에서 먹고 자며 밤이면 몇 번씩 간판을 다시 그렸다.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잡지에 나온 만화나 삽화, 사진을 보고 극장 간판에 응용하기도 했다. 그림을 잘 그린다는 소문이 나면서 파라마운트 극장, 봉래극장, 국제극장 등으로 스카우트 되었다. 국제극장에서는 사오십대가 맡던 선전주임을 십대인 그에게 맡기기도 했다.

형편이 나아지자 김산호는 검정고시로 중학교 과정을 마치고 서라벌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세계에 나가기 위해 미군부대 장교에게 영어교습도 받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라벌예대에 진학해 서양화를 전공했다.

‘피터링’(왼쪽)과 ‘청동마왕’ 커버. 필자 제공

대학에 다니던 김산호는 만화출판사 편집자에게 권유받아 만화 창작을 시작했다. 1958년 대학을 졸업하고, 잡지 ‘만화세계’에 독립군 이야기 ‘황혼에 빛난 별’을 발표하며 데뷔했다. 1년 뒤 약관의 나이에 발표한 ‘정의의 사자 라이파이’가 크게 성공하며 시리즈를 1962년까지 이어갔다. 1965년에는 라이파이 아들 피터링이 주인공인 ‘피터링’을 발표하며 ‘산호 유니버스’를 만들기도 했다. SF 장르뿐 아니라 만주 활극 ‘해뜨는 나라’,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스파이의 활약을 그린 스파이 장르 ‘트리제로’, 판타지 장르 ‘청동마왕’, 해적이 등장하는 해양 모험 액션 ‘무적함대’, 보르네오 정글에서 벌어지는 모험만화 ‘나나기’, 액션장르 ‘태평양 순찰대’, 소설을 번안한 ‘모비 딕’ 등 1966년까지 약 200여 편의 다양한 만화를 발표하며 활발하게 활동했다.

히어로 같은 모험

한국에서 최고 인기를 누렸지만 어린 시절부터 꿈꾸던 새로운 세계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했다. 고단샤에서 관심을 보였지만 일본보다는 만화의 본고장 미국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김산호에게 한국의 창작 환경은 답답했다. ‘정의의 사자 라이파이’ 1권을 그려갔을 때 출판사에서는 팔리지 않을 것이기에 출판할 수 없다고 했을 정도였다. 5·16 이후 사전심의가 시작되면서 악당들의 표식으로 그린 별이 인민군 표식과 같다고 문제가 되기도 했다. 선과 악의 관계가 모호하고, 여성 히어로도 함께 활약하는 ‘라이파이’ 시리즈를 한국에서 계속 그리기 어렵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동경하던 세계에 나가 자신의 실력을 겨뤄보고 싶었다.

1966년 몬트리올 엑스포 참관을 핑계로 미국 비자를 받은 그는 도쿄, 하와이를 거쳐 샌프란시스코에서 비행기를 내려 버스로 이동해 뉴욕에 도착했다. 무협만화 ‘흑검무’를 들고 당시 미국 4대 출판사 중 하나인 찰튼코믹스를 찾아갔다. 테스트로 내어준 작업이 통과한 뒤 스토리를 받아 작화를 하다가 혁신적인 연출을 선보이며 편집자의 인정을 받았다. 호러만화 ‘고스트 매너(Ghost manor)’, 액션만화 ‘하우스 오브 양(House of Yang)’, 웨스턴 만화 ‘샤이안 키드(Cheyenne Kid)’, 괴기만화 ‘블 라디 멀메이드(Bloody Mermaid)’등을 발표하며 찰튼코믹스의 전속작가로 활동하며 1978년까지 300여 편의 만화를 발표한다. 이후 아이언호스 출판사를 경영하며 자신의 여러 작품을 출판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패션사업으로 크게 성공하고, 사이판에서 관광사업을 하기도 한 김산호는 1988년 사업을 정리 후 만주로 이주하여 역사 연구를 시작했다. 그리고 기록화 형식의 그림과 글이 합친 형태로 구성된(김산호는 이를 ‘회화극본’이라 이름 붙였다) ‘대쥬제국사’를 1998년에 출간했다. 이후 회화극본 ‘두만강’, ‘대불전’, ‘대한민국사’, ‘왜사’, ‘대한민족통사’ 등을 발표한다.

‘라이파이’는 당대를 앞서간 작품이었다. 세계와 우주를 넘나들었고, 선악의 이분법을 벗어난 악당들이 등장했으며, 여성 히어로 제비양의 활약도 만만치 않았다. 자신을 가로막는 거대한 벽 앞에 자기운명을 탓하며 끝나는 신파가 유행하던 시대를 앞서간 작품이었다. ‘라이파이’를 만들기 위해 ‘산호 스튜디오’를 설립해 철저하게 기획되고 분업화된 만화창작체계를 만들었다.

‘녹의여왕과 라이파이’ 완결편에 수록된 산호스튜디오 소개 글을 보면 김산호는 자신을 ‘산호스튜디오 총지휘감독’으로 규정했다. 산호스튜디오에는 제작부·기획부·외교부 3개 부서를 두었다. 제작부에서는 데생, 페인팅, 활자 수정 등을 부서로 나누어 진행했다. 기획부는 다양한 자료 조사와 작품 기획을 담당했고, 외교부는 독자를 관리했다. 작품뿐 아니라 작품을 만드는 체계도 시대를 앞서갔다.

이렇게 시대를 앞서간 다양한 모험이 한국에서 활동이 10년을 채우지 못했음에도 김산호를 1960년대를 대표하는 만화로 독자들에게 각인한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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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13, 2020 at 02:02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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