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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October 13, 2020

[만화로 본 세상]3월의 라이온-장기기사 이야기 책으로 엮어 외적 지평 넓혀 - 주간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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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만화를 책으로 묶는다는 건 작품이 몸을 하나 더 갖는다는 뜻이다. 만화가와 편집자는 컷의 배치를 바꾸고 말풍선을 수정하고 독자에게 읽히는 순서를 정돈한다. 그렇게 다시 책으로 태어난 만화는 이전의 연재작과는 또 다른 성격을 띠게 된다. 얼마 전 <3월의 라이온> 신간을 읽으며 이 얇은 만화책 한 권 안에 얼마나 많은 사람의 노고가 담겨 있는지 새삼스레 다시 느끼게 됐다. 책은 얇고 종이는 가벼웠지만, 만화책을 넘길 때마다 전달되는 무게는 묵직했다.
<3월의 라이온> 15권 한국어판 표지 / 학산문화사

3월의 라이온> 15권 한국어판 표지 / 학산문화사

<3월의 라이온>은 <허니와 클로버>로 유명한 만화가 우미노 치카가 2007년부터 연재 중인 만화다. <3월의 라이온>의 주인공은 중학교 때 프로 장기기사로 데뷔했던 고등학생 레이다. 레이는 어린 시절부터 쭉 학교에서는 따돌림을 당해왔고, 초등학교 시절 교통사고로 가족을 모두 잃었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레이에게 손을 내민 건 프로 장기기사인 코다다. 그의 길을 따라 레이는 장기 기보에 파묻힌 유년 시절을 보내고, 이윽고 프로로 데뷔한 뒤에는 집을 얻어 독립한다.

다시 혼자가 되었지만, 그래도 레이는 서서히 자신의 ‘곁’을 만들어간다. 알게 모르게 서서히 가족이 된 미카즈키당 사람들, 장기 말을 나누며 동료가 된 장기계 사람들. 그저 의무감 하나로 꾸역꾸역 이어가던 학교에서도 유의미한 관계를 만나면서, 레이는 점차 ‘세상 안으로’ 들어온다.

<3월의 라이온>은 레이가 사는 세계의 면면을 꾹꾹 눌러 담은 작품이다. 레이와 주변 사람들뿐만 아니라 레이와 함께 장기판 앞에 마주 앉는 장기기사들의 서사를 다종다양하게 조명하는 것도 이 작품의 특징이다. 이번 신간에서 레이의 상대는 프로 7단 타나카 타이치로다. 그는 장기기사 중에서는 예외적으로 맞벌이를 유지하면서, 살림과 육아를 책임 있게 감당해왔다. 아이들을 대학에 보낸 뒤, 타나카 타이치로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장기계에 뛰어든다. 그는 지금까지 쌓아왔던 자신의 장기습관을 모두 버리고, 새로운 왕도를 만들어낸다.

<3월의 라이온>은 장기기사 한명 한명을 살뜰히 조명하며 이야기 세계를 넓힌다. 이런 측면이 작품 내적인 확장이라면, 책으로 엮은 <3월의 라이온>은 프로 장기기사의 칼럼을 함께 실어 외적인 지평을 넓혔다. 이번 권에서 칼럼은 장기 연구, 장기기사의 체력관리법 등을 다뤘다. 이는 독자가 만화를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 여기에 더해 이번 신간엔 아주 특별한 미니 일러스트도 삽입됐다. 작가의 반려묘 ‘분짱’이 세상을 떠나면서 독자들에게 전하는 작별 인사 연작이다. <3월의 라이온> 시작과 더불어 작가 후기에 내내 등장했던 ‘분짱’은 독자들에게도 애틋한 존재다. 레이의 이야기를 따라 책장을 넘기다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분짱을 발견했을 때, 분짱을 실물로 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마치 오랜 친구를 잃은 듯한 감정에 휩싸였다.

출판 업계 관련자들을 인터뷰한 책 <출판하는 마음>에서 저자 은유는 “글의 총합이 책이 아니라”고 썼다. 이 표현을 빌리자면, 연재분의 총합 역시 만화책이 아니다. 만화책은 연재분과는 다른 물성으로 표지부터 구성, 삽지, 편집 등을 통해 독자에게 또 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그래서 웹툰 시대인 지금에도 나는 여전히 만화책을 놓지 못한다. 만화책이 아니라면, 이토록 사랑스러운 분짱의 인사를 결코 만날 수 없지 않았겠는가

조경숙 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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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12, 2020 at 12:11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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