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를 뛰는 고양이가 있다. 과외부터 물류창고 그리고 건설 현장과 식당 서빙까지 종목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하는 ‘유키뽕’이라는 녀석이다. 아즈마 카즈히로가 1998년부터 15년간 연재한 만화 <알바고양이 유키뽕>의 주인공인 그는 프리터족(취업 대신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이들) 주인을 만나, 대신 월세를 벌어오기도 하고 이별의 순간 위로도 건네며 술주정도 받아주는 고단한 삶을 살고 있다. 마치 우리의 모습처럼 말이다.
아즈마 카즈히로의 알바고양이 유키뽕> 12권 한국어판 표지 / 북박스
만화적 과장이 아니다. 사업자가 불황에 가장 먼저 줄이는 것은 인건비다. 건물 임대료나 공과금 혹은 제품의 원가는 사업자의 의지로 조절하기 힘들다. 하지만 인건비는 가능하다. 최저임금이 크게 오른 이후 인력을 줄이고 자동화 시스템 같은 대안을 모색하는 사업장이 많아졌다. 이는 곧 일자리가 줄어들고 경쟁이 치열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코로나19 이후, 강남의 한 카페의 구인 모집 공고에 평소의 30배인 하루 300명이 지원했다고 한다. 15곳에 면접을 봤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는 한탄이 이어졌다.
유키뽕은 영업사원으로 일하기도 한다. 그의 상사는 현재의 경제성장을 이끈 전후 세대로 고리타분한 어른의 훈계를 하는 의기양양한 ‘아재’다. 그런데 갑자기 그는 고양이랑 영업실적은 비슷하면서 세 배나 월급을 받는다며 해고 통보를 받는다. 기업은 급여가 싼 세 명의 고양이를 쓰는 것이 바로 노동시장의 세계화라 말한다. 우리의 현재이기도 하다. 기업들이 노동력이 싼 곳으로 생산시설을 옮기는 일은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돼왔고, 미국과 유럽의 노동자들은 이민자들에게 자국민의 일자리를 빼앗기지 않겠다며 싸우기도 한다. 그런 투쟁이 격해지면 혐오와 뒤섞이는데, 지금 한국 땅에서도 벌어지는 일이다.
유키뽕이 사슴공원에서 인력거 알바를 하는 모습을 보고, 고양이가 직접 밥값을 벌겠다는 모습이 기특하다며 다가온 회장님이 말한다. “요즘 젊은 애들은 고생을 몰라.” 우리 주변에서 세대 간 충돌이 많이 생기는 지점이다. 고도성장기에는 고생하면 그만큼 보상을 받을 수 있었지만, 지금의 청년들은 현재의 노력에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한다고 느낀다. 하루 12시간, 한 달에 30일 쉬지 않고 20년을 일하면 서울에 집을 마련할 수 있을까. 어차피 이룰 수 없는 목표를 위해 행복을 포기하는 대신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벌어서 살자는 워라밸이 새로운 시대정신이다.코로나19로 이미 존재하던 노동의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고 뚜렷해졌다. 영세자영업자와 비정규직부터 내몰리고, 그다음은 커다란 기업이 될 것이다. 국적이라는 표식으로 서로를 미워하는 것도 심해졌다. 어떤 업종은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고사 직전이다. 우리는 유키뽕처럼 다음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까. 고양이로 태어났어야 했다.
황순욱 초영세 만화플랫폼 운영자>
August 21, 2020 at 01:20PM
https://ift.tt/3jgwOln
[만화로 본 세상]알바고양이 유키뽕-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하는 서글픈 현실 - 주간경향
https://ift.tt/2Ym2TPU
No comments:
Post a Comment